오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전국 주의원 선거에 도전장을 내민 여성 후보 수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미 정계에 거센 '여풍(女風)'을 예고하고 있다. 전체 출마자 3명 중 1명 이상이 여성으로 채워진 가운데, 출마자의 3분의 2 이상이 민주당 소속으로 나타나 정당 간 성별 불균형 극복이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럿거스 대학교 미국여성정치센터(CAWP)의 최신 집계에 따르면, 올해 주의원 선거가 실시되는 전국 46개 주에서 총 3,824명의 여성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이는 종전 최고 기록이었던 2022년의 3,621명을 넘어선 수치로, 이번 선거 주기 전체 주의원 후보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35.5%에 달한다.
현재 미 전역의 주의회 의석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3분의 1 수준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 중이나, 여전히 완전한 성별 균형(Parity)과는 거리가 있다.
데비 월시 CAWP 소장은 "일부 선거 주기에서 여성 출마자가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완만한 진전이 이어지고 있다"며 "정치적 변화를 향한 의미 있는 발걸음이지만 단 한 번의 선거로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으며, 미국의 정치 시스템 자체가 이러한 느리고 꾸준한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구조화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정당별 격차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 공천을 확정한 여성 후보 중 68%가 민주당 소속이며, 현재 주의회에 재직 중인 전체 여성 의원 가운데서도 민주당의 비중이 약 64%에 이른다.
월시 소장은 "의회 내에서 진정한 성별 균형을 이루려면 민주당 여성 의원만 선출해서는 불가능하며, 공화당 차원의 대대적인 노력이 필수적"이라며 "여성이 실질적인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양당 모두에서 고르게 의회에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전반에서 여성의 정치적 야망 수치는 남성에 비해 낮게 조사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들은 스스로의 자격 요건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경쟁 구도에 대한 거부감이 높고, 출마 권유나 지원을 받는 빈도도 남성에 비해 적은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대다수 주가 '반전업(Part-time) 주의회' 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전업 직장 생활과 주 육아 담당자로서의 역할을 병행해야 하는 여성들에게는 출마 자체가 커다란 현실적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화당의 경우 상황이 더욱 복잡하다. 전문가들은 올해 공화당이 수성(방어)에 주력해야 하는 정치적 환경에 처한 데다, 여성 후보를 위한 조직적 지원책 부족,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에 대한 거부감 등이 보수 성향 여성들의 정계 입문을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관계 컨설팅업체 MultiState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주의회 내 여성 의원 수는 약 40% 증가했다. 다만 지역별 편차는 극심한 상황이다. 콜로라도, 네바다, 뉴멕시코주에서는 여성 의원이 전체 의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웨스트버지니아, 사우스캐롤라이나, 미시시피주에서는 그 비율이 15% 미만에 불과하다.
이번 선거 양상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중간선거 당시 여성 후보들이 대거 정계에 진출했던 2018년 선거와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현재 공화당을 향한 정치적 기류가 악화되면서 의회 주도권은 물론 수백 개의 주의회 의석이 민주당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간선거는 전통적으로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 최대 국정 화두로 떠오른 '생활비 부담(Affordability)' 이슈가 여성 후보들에게 유리한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화당 여론조사 전문가인 아만다 이오비노 컨설턴트는 "남성 유권자나 후보들이 소득, 임금 상승, 일자리 창출, 투자 성과 등 거시적 관점에서 경제를 바라보는 반면, 여성들은 가계 예산이나 장바구니 물가 등 실질적인 생활비용 측면에서 접근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제 전반보다 체감 물가가 최우선 이슈로 부상할 때는 비용 측면을 본능적으로 다룰 줄 아는 후보가 유리하다"며 "남성 후보에게도 이러한 어법을 교육할 수 있지만, 여성 후보들에게 훨씬 자연스럽게 체화되어 있다"고 밝혔다.
텍사스주 하원의원에 출마한 전직 교사 스테파니 보드(민주) 후보 역시 여성들이 이러한 민생 문제를 훨씬 더 진정성 있게 전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드 후보는 "여성들은 가정과 가족을 관리하고 일상적인 삶을 유지하는 최전선에 서 있다"며 "여성의 참여 없이 통과된 법안들이 현장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총기 규제 단체인 '맘스 디맨드 액션(Moms Demand Action)' 봉사활동을 계기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2022년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지 판결 이후 여성들의 출마 의지가 한층 더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텍사스에서는 내 두 딸이 내가 가졌던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현실에 여성들이 깊은 환멸과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보드 후보는 휴스턴 인근의 보수 우세 지역에서 공화당 그렉 애보트 주지사의 지원을 받는 전 해리스 카운티 서기 스탠 스탠아트 후보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으나, 이번 선거에서 뒤집기가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보드 후보의 캠페인은 전국의 임신중절 권리 옹호 민주당 여성 후보들을 지원하는 정치활동위원회(PAC) '더 퍼스트 아스크(The First Ask)'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 단체는 정치적 격변기에만 일시적으로 여성 후보가 몰리는 현상을 넘어, 지속 가능한 정치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캐롤라인 웰스 대표는 2018년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 의원이 주의회 과반을 차지한 네바다주 사례를 언급하며 "네바다처럼 여성들이 계속해서 승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여성 의원들이 법안 통과율이 높고 상대당과의 타협에 적극적이며, 가족에게 실질적 이익이 되는 입법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며 공화당 측에서도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이 배출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공화당 측도 여성 인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보수 성향 주의원 당선을 지원하는 '공화당 주 리더십 위원회(RSLC)'는 2021년부터 여성 후보 발굴 프로그램인 '라이트 리더스 네트워크(Right Leaders Network)'를 운영 중이며, 올해 12개 주에서 67명의 여성 주의원 후보를 배출했다.
이오비노 컨설턴트는 "올해처럼 슈퍼다수당 의석을 지켜내야 하는 수성 국면에서는 새로운 여성이나 소수계, 유공자 후보를 적극 영입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면서도 "2020년과 2022년 수립된 공화당 여성 출마 기록을 바탕으로 향후 선거 주기에서 여성 인재 풀을 다시 채워 넣는 작업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조지아주에서는 올해 여성들의 정치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조지아주 여성 입법지원 단체인 '조지아 WIN 리스트'의 멜리타 이스터스 대표는 "올해 조지아주 주의원 선거에 역대 최대인 127명의 여성이 출마했으며, 이 중 76명을 공식 지지했다"고 밝혔다.
이스터스 대표는 "남성들은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출마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여성들은 공공서비스와 봉사라는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하는 경향이 크다"며 "여성은 협력 중심의 의정 활동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수세대에 걸쳐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 온 경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조지아주 하원의원에 도전하는 민주당 미셸 슈라이너 후보는 출마를 결정하기까지 심각한 고민을 거쳤다고 털어놓았다. 심리학자이자 연구원인 그는 아틀랜타 외곽에서 29년간 의석을 지켜온 공화당 샤론 쿠퍼 의원에게 도전장을 냈다.
슈라이너 후보는 "세 번의 출마 요청을 받고서야 비로소 손을 들었다"며 "출마 결정은 내 생일에 선거 운동을 하고, 딸의 축구 경기나 아들의 야구 경기를 놓쳐야 하는 등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무거운 결단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단순히 현역 의원에게 도전하는 것을 넘어, 지역사회에 대한 감사와 봉사의 마음으로 기꺼이 일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며 주민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