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부 자율에 맡기는 개편안 추진… 환경단체 "밀실 인허가 길 터줘"

트럼프 "AI 패권 잡으려 필수" vs 주민 "공기오염·소음 피해 방치" 맞서

연방 환경보호청(EPA)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주요 산업시설 설립 시 거쳐야 했던 '주민 의견 수렴 및 사전 고지' 연방 의무 조항을 폐지하는 개정안을 추진해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의 인프라 확장으로 미 전역에서 환경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이번 조치가 지역 주민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인허가 과정을 '밀실화'할 것이라는 비판이 잇따른다.

개정안의 핵심은 대기오염물질 배출 시설에 대한 주(州)정부의 공공 고지 의무 완화다. 기존에는 연방 기준에 따라 인허가 전 반드시 주민 공람과 의견 수렴을 거쳐야 했으나, 앞으로는 각 주정부가 자체 판단에 따라 절차 도입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환경단체와 시민사회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남부환경법센터(SELC)의 케리 파월 선임변호사는 "지역 사회는 거주지 인근에 환경 오염 우려 시설이 들어서기 전 목소리를 낼 법적 권리가 있다"며 "이번 개정안은 공기오염 허가 절차를 주민 몰래 진행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EPA 측은 과도한 규제 완화라는 비판을 일축했다. 캐롤라인 홀런 EPA 대변인은 "이번 개정안은 소규모 오염원에 대한 인허가 절차 운영권을 각 주정부에 환원하는 '협력적 연방주의'의 일환"이라며 "환경 기준 자체를 낮추거나 배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연방 차원의 최소 기준이 사라질 경우, 주정부 간 환경 규제 수준에 따라 지역별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환경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남부 및 중서부 주에서는 주민들도 모르는 사이 대형 데이터센터 들어설 위험이 커졌다. 현재 데이터센터 건설이 집중되고 있는 버지니아와 조지아 등지가 대표적이다.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전력 소비 외에도 비상 발전기 가동 과정에서 질소산화물(NOx), 일산화탄소 등 유해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한다. 여기에 막대한 냉각수 소비, 24시간 발생하는 저주파 소음 등 삶의 질을 저해하는 요인이 산적해 있어 지역 사회와의 마찰이 지속되어 왔다.

이번 개정안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AI 인프라 최우선 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데이터센터를 거부하는 지역은 결국 낙후를 면치 못할 것"이라며 대대적인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대중국 기술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력 확보와 데이터센터 확충이 시급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환경오염 피해를 우려하는 표심이 커지면서 데이터센터 인허가 문제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EPA가 내년 중 해당 규정 개정을 최종 확정할 방침인 가운데, 여야를 막론한 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